<기고> 계영배(戒盈杯)에 길을 물어

부천미래신문 | 입력 : 2019/07/23 [14:45]

 

 

▲ 당현증 전 부천시의원.    

자연의 이법은 계절과 밀접하다. 대서답게 폭염으로 고온 경고가 발동되고 사람의 활동이 느려진다. 이제 시절도 그답지 않은 듯하다. 인간적 문화에 대한 자연의 반격일 수도 있지만, 자연의 인간을 향한 문화의 반격일 수도 있다. 문을 열면 열기가 숨쉬기를 괴롭힌다. 지독하다.

 

때 이른 더위에 문득 계영배를 떠올려 본다. 술잔 이야기다. 지나친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려고 하늘에 정성을 들여 아무도 모르게 만든 의기(儀器)에서 유래한 절주배(節酒杯)이다. [도덕경]에서는 일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고도 가르친다. 인간을 향해 과욕의 멈춤을 현시적으로 알려주어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

 

요즘 부천 대장동과 인천 계양의 몇 개 동에 서울주택 가격 안정화라는 이름하에 약 37천여 가구의 주택이 들어서는 3기 신도시 국가 주택 프로젝트가 시동을 걸고 진행 중이다. 두 곳 모두 그린벨트가 93%를 넘고 오랜 기간 동안 전통적인 농업지역으로 쌀과 농작물이 주종을 이루어온 녹지지역이다.

 

서울의 강남과는 거리도 멀다. 정 반대 방향에 위치한 지역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50여 년 전부터 국가가 법으로 규정한 개발제한구역이다. 한 세대를 훨씬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진 긴 세월동안 개발과는 담을 쌓고 묵묵히 주어진 농사를 천직(天職)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온 농민들의 삶이 깃들고 녹아든 거룩한 삶의 터전이다.

 

이제 국가가 필요로 해서 강제수용이라는 용어를 자랑스럽게 사용해도 오랜 동안 신성한 농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강탈하려는 폭압적 행정 앞에 이해 당사자들인 농민은 속수무책이다. 나의 아버님은 해마다 통지되는 공시지가의 여부를 묻는 공문에 인상을 반대하셨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농토에 대한 세금이 오르는 것을 저어하셨던 것이다.

 

그린벨트가 음가적 농민의 생명과 같듯이, 도시민들에게도 환경적 측면에서는 양가적으로 마찬가지다. 미세 먼지로 온 나라가 난리다. 환경이 곧 목숨인 증좌다. 환경, 시민단체에서는 시장을 상대로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공권력과 생명권의 다툼이다. 공권력이 국가사업이라는 미명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설득과 이해를 강요하지만 이제 농민보다는 도시민들의 반대가 더욱 거세다. 국민으로서 법적인 생명권을 주장하는 바다.

 

그렇다. 농민은 자연을 숙명으로 알고 자연과의 동화 속에서 삶을 받아들이는 요령을 터득했다. 체념의 거룩한 받아들임인 것이다. 법이 자연을 능가한 망동을 농사로 달래고 견뎌온 것이다. 그런 순박한 농민을 향해 공권력은 온갖 미사여구와 유혹으로 강제 수용하는 국가의 장래는 미세먼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것이라는 건 오래된 상식이다. 농토보다 인공적 공원조성이 저감 효과가 높다는 것은 순수한 거짓이다. 농업을 위한 그린벨트 역사만큼 개발은 계영배의 의미만큼 절실하다. 지금은 지금만을 위해 내일을 저버린 광기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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